스틸웰장군은 중국인민의 오랜 친구로서 중국의 해방과 진보 사업을 적극 지지하였고 중미인민의 친선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였습니다.중국인민은 이를 잊지 않을것입니다.
이 뉴스는 스틸웰 장군의 외손자인 존 이스트브룩 씨의 몇 년 전 순례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2005년, 운남 백련화순관광문화발전유한회사가 화순의 당년 원정군 제20 집단군 사령부 옛터에 운남-버마항전박물관을 건설하였다.이 박물관은 중국 최초로 민간이 출자하여 건설하여 민간이 소장하고 버마 항전을 주제로 한 박물관으로서 큰 영향을 끼쳤다.2013년,이 박물관의 실물들은 국영인 운남성서부항전기념관에 옮겨져 전시되였다.2009년 4월 28일 스틸웰 장군의 손자 조지프 스틸웰과 외손자 존 이스터브룩 일행은 당시 화순에 있는 버마 항전 박물관을 방문했다.
인상적인 것은 중국 원정군이 처음으로 버마에 들어가 작전에서 패전한 역사적 사실을 전시하고 있는'비장한 원정'전시장을 방문했을 때였다.안내원의 소개에 따라 말이 많지 않던 일행은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오래된 흑백 사진 한 장을 앞에 놓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그가 바로 당시 버마전장으로 이름난 스틸웰장군이다.조상들의 옛 사진 앞에서 서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감격에 겨웠다.
스틸웰은 미국 플로리다주 팰러트카에서 태여났고 미국 륙군대장이며 1904년에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였다.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적이 있다.1920년부터 1923년까지 중국에 와서 사업하였다.1926-1929년 중국 천진에서 중국 주재 미군 영장, 참모장 대리를 지냈다.1935-1939년에는 중국주재 무관으로 있었다.태평양전쟁이 발발한후 중국버마인도전구 미륙군사령관 겸 중국전구 총사령 장개석의 참모장으로 있으면서 련합군을 지휘하여 먄마에 침입한 일본군을 항격하였다.1943년에 동남아세아련합군 최고부사령을 겸임하면서 먄마북부에서의 중미련합군의 반공격전역을 지휘하였다.
이 사진은 1942년 5월에 찍은 것이다. 당시 중국원정군이 버마에 들어가 작전에서 실패하자 스틸웰은 자기를 마중하러 온 비행기를 거절하고 200여명을 거느리고 걸어서 버마 북부의 수림을 나와 인도로 들어갔다.퇴각하는 동안, 미군은"타잔 계획","xy 계획"을 준비했는데, 이것이 바로 후에 버마와 윈난 대반격 작전이었다.
중국 정부는 1945년 초에 개통된 인도의 레도에서 미얀마 북부 미지나를 거쳐 중국 윈난성 쿤밍에 이르는 중국-인도 도로를 스틸웰 도로라고 명명하였다.
눈 깜짝 할 사이. 자 60 여년이 지나도 잊지 중국인이 미국인, 2009년 스 탈 월 장군 외손 존 이스트 브 룩 씨 일행이 중국 정부의 요청에 응하여시를 방문, 그들도 기회 가 찾아 온 화순, 목도 가 운남-먄 항전 박물관에서 그해 미국 군인들이 운남, 먄 마 전장에서 쓰던 실물,6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중국에 와서 전쟁을 도운 선조들을 잊지 않고 중국인들이 표현하는 감사의 마음을 느낀 그들은 잇달아 댓글을 달아 진심 어린 감동을 나타냈다.
존 이스트브룩은"나는 텅충 국민들이 항일전쟁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존경하고 존경한다"며"역사와 미 · 중 양국 국민의 긴밀한 관계를 잊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날을 내다보면 중미 양국도 서로 성취하고 공동으로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중미관계의 기초는 민간에 있고 힘의 원천은 인민의 친선에 있습니다.양국 국민은 마땅히 교류를 강화하고 이해를 증진하며 협력을 확대하여 양국 관계 발전에 끊임없이 새로운 동력을 주입해야 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존 이스터브루크 (john eastbroke) 씨가 수년전에 화순에서 수확한 중미우정의 감정이 세월과 비바람의 세례속에서 반드시 력사를 넘어 중미 량국인민 사이에서 대대로 먼 미래까지 이어질것이라고 더욱 확신하게 한다.